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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편. 방과 후에 아이가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할 때그 시간은 정말 ‘낭비’일까

by 엄마샘 2025. 12. 19.

하원 후 집에 돌아온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가만히 있을 때, 많은 부모들은 이 시간을 불안하게 바라봅니다. 놀지도 않고, 학습도 하지 않고, 대화에도 반응하지 않는 모습은 마치 하루의 중요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워킹맘 가정에서는 방과후 시간이 아이와 연결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보니, 이 공백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발달과 학습의 관점에서 보면,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 시간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명확한 기능을 가진 상태입니다. 문제는 이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회복과 다음 행동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방과후에 멍하니 있거나 활동을 거부하는 상태는 흔히 ‘무기력’이나 ‘회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뇌의 피로 누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초등 전후 아이들은 학교에서 지속적인 주의 집중, 규칙 준수, 사회적 반응을 요구받습니다. 이는 성인에게도 피로를 유발하는 고난도의 인지 작업입니다. 특히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경우에는 수업 내용보다 환경 자극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 처리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이로 인해 하원 후에는 뇌가 새로운 입력을 받아들이기보다, 이미 받은 자극을 정리하고 안정시키려는 상태로 전환됩니다. 이때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것은 학습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계가 과부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선택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을 문제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의미 없는 시간’으로 방치되거나, 반대로 ‘즉시 생산적인 시간’으로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는 다시 움직일 계기를 잃고, 반대로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숙제나 놀이를 강요하면 아이는 회복 기회를 빼앗겼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 구간은 방임도 통제도 아닌, 관리가 필요한 회복 구간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발달 전문가들은 방과후 시간에 일정한 ‘비활동 구간’을 두는 것이 이후 학습 지속력과 감정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합니다. 이 비활동 구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뇌에서는 정보 정리와 긴장 완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환경 자극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TV, 스마트폰, 과도한 소음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가 안정된 공간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이 시간에는 질문과 지시를 줄여야 합니다. “뭐 할 거야?”, “이제 뭐 해야지?” 같은 말은 아이에게 선택 부담을 주어 오히려 회복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 종료 시점이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아이에게는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신호가 필요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물을 마시거나 손을 씻는 등 간단한 신체 활동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연결 고리를 만들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워킹맘 가정에서는 이 시간이 특히 중요합니다. 하루 동안 아이를 직접 보지 못했다는 미안함 때문에, 방과후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간이 활동과 성취로 채워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안정적으로 확보된 아이일수록 이후 놀이와 학습에 더 잘 참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부모의 개입이 줄어들수록 아이의 자기 조절 능력이 자연스럽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은 아이에게 스스로 상태를 조절해 보는 연습장이 되며, 장기적으로는 감정 폭발과 회피 행동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줍니다.

 

방과후에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볼 때, 그것을 문제 행동으로 규정하기보다는 하루의 피로가 정리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무조건 채우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방치하지도 않으며, 회복과 전환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할 수 있을 때 방과후 루틴은 훨씬 안정적으로 작동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아이의 하루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다음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준비 단계입니다.

 

오늘의 엄마학교는 여기까집니다. 하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