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시간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부모와 아이가 가장 많이 마주하는 시간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하루 동안 쌓인 감각 자극과 사회적 긴장을 풀어내는 단계에 들어가고, 부모는 일과 돌봄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전환 구간에 놓인다. 이때 오가는 말 한마디, 반응 하나가 아이의 정서 안정과 행동 패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발달장애 아동의 경우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환경을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보건복지부와 국립특수교육원의 자료를 종합하면 가정 내 의사소통 방식은 아동의 문제행동 빈도, 정서 조절 능력, 부모 스트레스 수준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방과후 시간에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는 아이의 하루를 정리하는 방식이자, 부모 스스로의 에너지를 관리하는 전략이 된다.

방과후 언어 환경이 발달에 미치는 영향
발달장애 아동은 상황을 맥락으로 이해하기보다 언어와 반복된 경험을 통해 의미를 형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달장애 아동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측 가능한 언어 환경에 놓인 아동은 불안 행동과 공격 행동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과후 시간에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가 지시와 통제 위주로 구성될 경우 아이는 환경을 위협적으로 인식하기 쉽다. 반대로 다음 행동을 예고하고, 감정을 언어로 설명해주는 방식이 반복되면 아이는 상황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 지금은 쉬는 시간이고, 그 다음에는 간식을 먹고, 이후에 저녁을 먹는다는 식의 설명은 단순해 보이지만 아이의 하루를 구조화하는 핵심 요소다. 이는 치료실에서만 가능한 개입이 아니라 가정에서 매일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아이를 안정시키는 말의 구조를 만든다
방과후에 필요한 언어는 길고 설명적인 말이 아니다. 국립특수교육원이 제시한 가정 내 의사소통 가이드에 따르면 짧고 일관된 문장,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는 표현, 부정어 사용을 최소화한 언어가 아동의 이해도를 높인다. 예를 들어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느냐는 표현보다 지금 소리가 커서 엄마 귀가 조금 아프다는 식의 설명이 아이의 행동을 조절하는 데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언어의 내용보다 구조다. 항상 같은 순서로 설명하고,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 아이는 말을 단서로 삼아 스스로를 조절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감정 소모도 줄어든다. 매번 즉흥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준비된 언어를 사용하면 방과후 시간의 긴장도가 낮아진다.
부모의 피로를 줄이는 언어 습관
방과후 시간이 힘든 이유는 아이 때문이 아니라 부모의 에너지가 이미 고갈된 상태에서 돌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의 가족돌봄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의 상당수가 언어적 갈등에서 가장 큰 피로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는 아이를 설득하거나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반복적인 언어 소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방과후 언어를 미리 정리해두면 이 피로를 줄일 수 있다. 오늘 할 일, 지금은 하지 않는 것, 다음에 할 행동을 짧은 문장으로 정해두고 반복하는 방식은 부모의 즉각적인 판단 부담을 낮춘다. 아이에게도 일관된 기준을 제공해 불필요한 충돌을 예방한다. 언어를 관리하는 것은 아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부모의 하루를 보호하는 일에 가깝다.
방과후 시간은 거창한 교육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루를 정리해주고, 감정을 설명해주며, 다음을 예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발달장애 아동에게 언어는 환경을 안전하게 만드는 울타리다. 그 울타리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 아이는 조금씩 스스로를 조절하는 힘을 기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 역시 방과후 시간을 버텨내는 사람이 아니라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오늘 아이에게 건넨 한 문장이 내일의 일상을 덜 흔들리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해도 좋겠다.